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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시 트래블 : 마음을 빚는 가상의 마을

들을리 소향 두번째 이야기

마음을 빚는 가상의 마을

들을리 소향


가상의 마을, 들을리

강릉의 옛이야기에 한 선비가 곶감 100개를 지고 대관령을 올랐다고 한다. 굽이를 돌 때마다 곶감 하나를 빼먹으니, 마지막에 달랑 한 개만 남았다. 나그네는 아흔아홉 굽이를 지나 100번 째에서 ‘들을리’에 이르렀을 것이다. 남대천에서 뻗은 하천이 귀엽게 흐르고 대관령 지맥의 능선이 감싸는 가상의 마을, 들을리에 소향이 있다.

고된 길을 걸어 온 이방인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전통주를 빚고 환대하는 공간이다. 소향의 최소연 대표는 강원도 화천과 봉평에서 ‘숲속의 식탁’을 운영하다가 2년 전 이곳에 정주했다. 

“도시와 왕래하며 운영하다가 1년간 터를 찾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고 자란 본래의 땅으로 돌아온 셈이죠.” 최 대표가 올린 건물은 중정이 있는 ‘ㄷ’자 한옥 구조로, 정남 쪽 따뜻한 햇살이 건물 안 끝까지 내리쬔다.

대표적으로 치유 프로그램 ‘숨고르기’와 ‘술빚기’가 있고, 강릉 전통주 체험에 동행하기로 한다. 참여자는 호스트가 제철 식자재로 요리한 식탁을 경험하고, 최 대표가 손수 만든 농익은 술을 테이스팅한 다음 직접 술을 빚는 시간을 따라간다. 소향의 워크룸이 한겨울의 날 선 추위에도 막 요리한 채소 요리들의 온기로 채워진다. 아름답게 플레이팅한 알록달록 채소 메뉴에 톳밥을 두 그릇이나 비운다.

최 대표는 채식을 내는 이유에 관해 윤리적 이슈와 환경에 미치는 육식의 악영향을 언급한다. 더욱이 알칼리성 식품인 채식은 산성의 성질을 지닌 술과 조화를 이루고 말이다. 채식 만찬이 끝날 무렵, 테이스팅 술들이 식탁에 나란히 오른다. 안주는 구운 마을과 수제 치즈를 올린 감말랭이, 제철 과일이다. 옆에서 최 대표의 동생인 최은수 씨가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한다.



전통주 테이스팅

“어떤 술을 좋아하세요?” 최 대표의 질문으로 시작하는 테이스팅은 그가 고문헌을 재해석해 양조한 전통주들로 이뤄진다. 강릉의 소나무 숲에 매달아 말린 쌀과 고르게 빻은 누룩, 하루 전 한소끔 끓여 식힌 물을 사용한 소향의 술은 빚는 사람, 온도, 발효 방식에 따라 맛과 향, 색이 다르게 변한다.

 발효시킨 술에 증류주를 첨가해 만든 과하주는 묽은 요거트처럼 쫀득한 질감에 단맛을 내고 도수는 적은 편. 반면 김천과하주는 물 없이 떡을 메치어 고되게 만든 약주로 수색이 말갛다.

“뚜껑을 여는 순간부터 발효되기 때문에, 첫맛과 다음 맛의 다름을 느끼게 됩니다.” 최 대표의 가이드로 경험하는 전통주가 너무 다채로워 같은 재료에서 나온 술이라는 점이 놀랍다.

개인적으로 2019년 9월에 만든 송절증류주가 근사했다. 증류주에 소나무의 새순을 침출 시켜 담근 40도 술로 스위스 아펜첼 지역에서 맛본 스모키한 알프스 위스키와 흡사하다.

운이 좋으면 식초처럼 시큼한 급성주와 순수 증류주, 전주의 모주 등 다양한 술이 곳간에서 나올 것이다. 최 대표는 전국의 전통주를 쫓아 고문헌을 연구하는 전문가에게 술을 익혔으며, 여전히 배움을 이어가는 중이다. “원하는 술이 나오지 않으면 1년 더 숙성하기도 해요. 5년여간 50여 종을 빚었고, 2021년에는 소향의 약주를 시판할 계획입니다.”


들을리, 술빚기

마무리는 테이스팅 전에 식힌 쌀에 누룩을 부어 술을 빚는 시간이다. 소향은 ‘체험’의 표면적 행위가 아닌 몸의 감각과 마음의 소리에 집중한다. ‘마음을 빚는 자세로 술을 빚으라’는 최소연 대표의 말은 그래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빚은 쌀을 열탕 소독한 유리그릇에 담는 일은 당연한 과정이지만, 온전하게 지키는 체험 양조장은 드물다. 면보를 뚜껑에 덮어 노란 고무줄로 엮는 갈무리까지 허투루 처리하는 것 없이 정성스럽다.

최 대표가 술 빚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물 위에 연꽃이 내려앉듯 손바닥을 사뿐하게 올려 지극하게 누른다. 소중한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개인의 기억과 경험에 따른 몸의 패턴대로 저마다 다른 공기가 차오르고, 다른 맛이 완성될 것이다. 이토록 충만하게 소향의 시간이 익어간다.

여유 시간이 있다면 소향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대관령 옛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어흘리 마을회관을 지나 삼포암길로 들어서면 대관령옛길인 바우길2구간과 만난다. 대관령박물관에서 대관령마을휴게소까지 총 8.5km의 길이다. 마을의 경계가 사라지는 지점부터 옛길의 환상적인 숲과 느린 시간을 마주한다.

글  신진주
사진  조혜원

본 < 들을리 소향 >프로그램은
'강원도사회적기업경제지원센터'와 함께합니다.


들을리 소향

주소

강원 강릉시 성산면 부동길 39

예약 및 문의

https://smartstore.naver.com/sohyang_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