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수선화, 시원한 몽돌 해변의 조화로 만들어진 이국적인 풍경
따뜻해진 배를 안고 수선화가 만개했을 공곶이로 향했다. 수선화는 4월까지 피어있지만, 3월 중순에서 말까지가 가장 예쁘다고 하니 이번 주가 가장 절정인 시기가 아닐까 싶다.
고현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지만,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 이상 소요되고 공곶이 바로 앞까지 가는 버스가 없어서 택시를 타기로 했다. 뚜벅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맛으로 여행을 다니기도 하는데, 가끔은 시간을 아끼고 조리 있는 여행을 위해 택시를 타기도 한다.
돈이 많이 없던 대학생 시절에는 버스가 1시간 뒤에 와도 기다렸고, 애매한 거리는 걷기도 많이 걸었다. 그때 만난 직장인 뚜벅이 여행자들의 말들이 택시 안에서 문득 떠올랐다.
“돈이 별로 없을 때는 그렇게 뚜벅이 여행을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될 때 뚜벅이면 택시를 이용하게 돼요.
한결같이 뚜벅이는 대중교통! 도보! 이런 걸 유지하고 싶어도 나중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시간을 조금 더 얻어서 다른 곳을 더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거니까.”
우리는 택시를 타고 1시간 조금 넘는 시간을 아껴 상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운 곳을 오래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지금부터다.
택시에서 내려 바로 보이는 ‘공곶이 이야기’.
지형이 궁둥이처럼 튀어나왔다 하여 공곶이라 불리고, 계단식 다랭이 농원으로 수선화와 동백 등 50여종의 나무와 꽃이 심겨 있다고 한다. 공곶이 아래 몽돌해변에서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파도소리를 즐길 수 있다-고 하니 얼른 발걸음을 서둘러 옮겼다.
잠깐 옆을 돌아보니 이런 글이 발길을 잡았다.
“행복은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가 아니라 여행 중에 발견되는 것이다.”
여행자들에게 나아갈 힘을 주는 고마운 글이다.
몇 발자국 또 가니 이런 글이 있었다.
“공곶이 가는 길에 다둥이네(개)가 있어요.”
여행할 때 또 우연히 만나면 가장 반가운 것이 강아지와 고양이 아닐까?
약간의 오르막길을 걷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그리웠던 바닷마을 풍경이 비춰졌다. 작은 통통배와 푸른 바다, 잡힐 듯한 산까지 더 높이 올라가면 그림 하나 공짜로 보겠지 싶었다.
드디어 마주한 ‘다둥이네’!
큰 대문 앞으로 우리가 다가가니 흩어져있던 강아지들이 재빠르게 달려와다.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반기는 아이들. 반려동물을 키우는 우리는 더욱 신이 나서 괜한 말도 걸었다.
“너네는 총 몇 마리야?”
“사람 좋아하는구나.”
“나한테도 와!”
검둥이, 흰둥이, 누렁이로 나뉘었는데 다들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지 손을 핥으며 격하게 반겨주는 모습에 거제 공곶이 들어서기도 전에 신이 났다. 사람이 아주 많을 시기에는 아마 공곶이의 인기스타는 다둥이들이 아닐까 싶다.
다둥이들에게 아쉬운 인사를 하고 더 올라가니 정자 하나와 탁 트인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나왔다. 서울에서 회색빛의 빌딩만 보다가 자연의 색감으로 더욱 거제도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꽤 많이 걸어 올라가야 한다. 정말 반갑게 보였던 ‘탐방로’. 이제부터가 거제 공곶이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울과 봄의 중간쯤 멈춰진 것처럼 보였던 숲길을 지나쳐야 수선화를 볼 수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잎 사이로, 무성한 햇빛을 받으며 거닐었다.
거제 공곶이는 노부부가 50년 동안 정성스럽게 가꾼 곳이라고 한다. 내려가는 돌계단도 하나하나 쌓으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황무지였던 곳을 호미와 삽으로 약 4,500평이나 되는 땅을 꽃밭으로 만들었다. 자연을 또 다른 자연으로 만든 노부부. 이런 공곶이의 배경을 들으면 자연을 해치지 않고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가는 그 모습과 순수한 마음에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이런 정성이 가득한 동백터널의 돌계단은 꽤 많고 길이 살짝 험한 편이니 조심조심 내려가는 것이 좋다.
이런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계산된 풍경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섬, 바다, 동백, 나무, 그리고 많은 식물들. 사진 한 장에 담기 힘들었던 눈부신 광경에 발걸음을 조금 앞으로 내딛었다. 그곳은 ‘출입금지’라고 적혔는데, 갑자기 뒤에서 할머님이 “들어와서 찍어요.”라고 하셨다.
바로 이 거제 공곶이를 직접 가꾸신 할머님이셨다. 직접 뵐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이런 우연이! 더불어 옆에 텃밭에서 일을 하고 계신 할아버님도 살짝 뵐 수 있었다. 할머님은 여전히 쌩쌩하신 기력으로 아주 예쁜 동백꽃을 땄다며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고, 짧게나마 두 분의 생활을 엿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어 아쉬운 인사를 했다. 내년에 다시 공곶이에 왔을 때도 건강한 할머님을 다시 뵐 수 있기를.
무인으로 판매하는 수선화꽃과 설유화, 화분도 만날 수 있다. 할머님이 직접 꽃을 신문으로 돌돌 말아 파란 바구니에 넣어둔 새로운 봄. 눈으로도, 향기로도, 이미 남쪽은 봄이 만개했다.
3월 초에 방문했기에 수선화가 잔뜩 피지 않았지만, 반 정도 활짝 핀 상태였다.
물 위에 떠있는 신선이라는 뜻을 가진 수선화. 특히 추위에 강해서 혹한 겨울을 이겨내고 이른 봄에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꽃 중 하나인데, 빠르게 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꽃이다보니 더욱 반갑기 마련이다.
자기애, 신비로움, 고결이란 꽃말을 가지고 있는 만큼 샛노란 자신을 아주 마음껏 뽐낸다.
거제 공곶이에 오면 무조건 해야 할 일!
무인판매에서 수선화를 사서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있는 ‘나’를 남겨보기. 공곶이 안에서 어디서 찍어도 프로필 사진을 바꿀 수 있다.
사진을 찍고, 같이 여행 오신 중년의 여자분들 사진도 찍어드리고, 대화를 나누고 걷다 보면 공곶이 안내표지가 나온다. 직접 나무판에 그림을 그리신 진심 어린 마음에 또 한 번 감동한다.
할머님이 직접 말씀해주시기도 했지만, 왔던 길 말고 몽돌해변을 쭉 거닐고 해안회귀로를 가로지르면 택시에서 내린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 다둥이(강아지)를 못 봐서 아쉽긴 해지만, 또 다른 길을 택했다.
뿌리가 적나라하게 보이는 오래된 나무를 뒤로하고 몽돌해변을 가로질렀다.
바다 너머 보이는 섬, 내도. 크고 작은 돌들이 모래를 대신해 자리하고 있어 또 색다른 느낌이다. 다음 코스가 자갈이 많은 바다였는데, 이것으로 충분하다 느껴져 취소했다. 대신 바닷바람을 맞으며 수평선을 바라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배 이름이 포세이돈이라서 웃기도 하고, 저 섬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지 가늠도 해봤다.
여행에선 별 거 아닌 것들이 이렇게나 생생하게 기억되고 소중하다.
왜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그러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함께 든다.
거제 공곶이는 한 노부부의 진심과 정성, 그리고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된 아름다움이 아닐까? 어느 누구도 훼손하지 않는 마음, 더 나아가 모두에게 진짜 봄을 선물하는 마음. 그 마음을 두둑이 챙겨서 뒤돌았다.
TIP
01
공곶이 앞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요.
20번대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시고 와현정류장에서 내리는 게 공곶이와 가장 가깝습니다!
버스로는 1시간 이상 소요됩니다.
02
고현버스터미널에서 공곶이까지 택시로 약 20분, 비용은 18,000원 정도 소요됩니다.
03
공곶이 수선화밭까지는 약간의 트래킹이 필요해요.
편한 신발과 복장을 추천합니다!
치마를 입는다면 긴 치마가 좋아요.
04
공곶이 수선화밭까지 향하는 길에는 다둥이네가 있어요.
사람을 좋아하는 댕댕이들이지만 문을 열면 반가운 마음에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05
수선화는 4월까지 피어있지만 3월 중순-말까지 가장 예쁘다고 해요!
06
언제나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실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인사해 주세요. :)